서우봉 노래, 순수를 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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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고 싶은 날

울고 싶은 날 한문용 별빛 촘촘한 하늘에서 그대별 찾지 못하는 날 나는 울고 싶어집니다 덤불 속 홀로 핀 나리꽃 아픔이 눈에 저미어 오는 날 나는 울고 싶어집니다 숨 막히는 깡마른 날 안간힘 쓰며 쓰며 담벼락을 기어오르는 힘 부친 달팽이 모습이 보이는 날 나는 울고 싶어집니다 갯바람에 마구 부서지는 파도가 아픈 바위를 때리는 날 나는 싶어집니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보다 더 애련한 에는 사랑을 가슴 속에 까맣게 묻어둬야 하는 날 나는 울고 싶어집니다

내 영상시 2022.09.25

가을을 엮어

가을을 엮어 한문용 상현달 길을 달음질치다보면 작은 소리에도 멈추는 귀뚜리 노래 소리 앞에 초저녁에서부터 내려선 가을 문턱 온밤 붉은 이파리만 뜨락에 고즈넉이 걸터앉았다 엊그제 떠난 물만 먹던 하늘 섬 아래 거저 준 소슬바람을 찌르르 벌레소리 때문에 비워 둘 수밖에 없는 기억 살짝 벌어진 틈새로 구름 오듯 와닿는 가을소리 낙엽소리

내 영상시 2022.09.20

달무리

달무리 글 / 한 문용 불꽃처럼 피어나 다 태우지 못한 안타까움 채양 없는 구멍 뚫린 모자를 쓰고 눈썰미보다 작은 공간에서 시간을 붙잡고 동심원을 그린다. 달맞이꽃 이슬 선율에 밤안개처럼 스멀스멀 기어드는 적막한 기운 달무리 안에서만 빛나는 고독한 빙화(氷花)의 미소에 눈시울이 뜨겁다. 달무리여 그대는 석고상 그 창백함보다 더 진한 외로움을 타고 났을지라도 동녘에서부터 달려오는 빛의 향연에 넉넉한 잠의 둥지를 틀 수 있는 조용한 기다림이 있구나. 사랑으로 다가올 잔잔한 사색의 여운 네게서 배운다.

내 영상시 2022.06.27

향연의 조각들

향연의 조각들 詩 늘봉 / 한문용 휘잉 등줄기를 타고 흐르는 널부러진 고독을 동이 째 쓸어 담은 남촌 바람에 울컥 치솟는 그리움 견디지 못해 몸 뒤척이다 무너지는 목소리가 들릴 때만 여자인 그녀 불꽃 내려 앉아 태우는 사랑의 향연 황홀한 연무로 설친 선잠에도 씨앗 여문다. 잠간 새 공간 속 만남 하늘 삼킨 어둠이 꺼이꺼이 소리 지르고 달려오는 날이면 삶에서 잘게 도막난 편린 내게 꿈꾸며 다가오는 향연의 조각들 편린 : 한 조각의 비늘 사물의 극히 작은 부분을 일컫는 말

내 영상시 2022.06.19

만나지 않았어도

만나지 않았어도 사랑에 빠지면 그 끝은 무엇일까 어쩌다 티격태격 갈등의 아픔도 지나고 나면 세월 속 잔해들도 서서히 내려앉느니 오늘도 기댈 사람 곁에 없어 인생 내리막에 번뇌로 물든 상념쪼가리만 하얗게 엉겨 붙어 차오르는 연민 따라 솟아오르는 분노 가당찮은 시간들에 퍼붓는 욕설은 비가림막에 부딪히는 가랑비처럼 소리 없는 장벽에 막혀버렸네 바다 건넌 사랑이 내 세월 안에 그냥 주저앉았으면

내 영상시 2022.06.05

곶자왈 노래

곶자왈 노래 한문용 숲에 하늘이 있다 빛 좇아 웃자란 동백나무 홀쭉이가 되었다 콩이끼가 형형색색 모난 돌에 나무 밑동에 다닥다닥 붙어 있다 하늘 향해 힘차게 기어오른다. 곶자왈은 동화 속 별자리를 수놓는 아늑한 이야기들이 만연한 우연 사이를 간간이 생명의 빛이 촉촉 내린다 틈새 볕만으로도 축성된 잎들이 파랗게 그대로 내려온 전설 영원히 늙지 않는 곶자왈

내 영상시 2022.01.04

외딴 곳에 가고 싶다

외딴 곳에 가고 싶다 한문용 소외일 수 없는 혼자만의 공간에서 하늘 우러러 묵상할 수 있는 곳 잔잔하게 일렁이는 바다 위를 곡선 그으며 날아오르는 갈매기 떼 풍요로운 외딴섬이거나 숲이랑 같이 숨쉬고 조각구름마저 낯설지 않는 곳에서 천년을 지내온 여울물 소리가 경이로운 침묵 깊은 산속이거나 양지바른 들판에서 밤이면 별빛에 미소 짓는 이파리가 얼굴에 흐르는 평온을 어루만져 가슴을 곱게 갈무리 할 수 있는 곳이거나 밟아도 미끌어지지 않는 끈적끈적한 진흙탕 속이거나 혼자일 수 있는 곳이면 어디든 주저하지 않으리

내 영상시 2021.12.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