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우봉 노래, 순수를 탐하다

2023/02 4

흔 세상 앓아 누워

흔 세상에 앓아누워 한문용 세상에 기대어 세속을 부순다 이젠 흔 세상 꼽지 않으려고 해도 날이 갈수록 생은 구석으로 밀려 영은 쇠하고 육은 문드러져 내 생각 곯은 배 채우는 일상에만 골몰하니 차라리 앓아 누었다 초연을 초월한 해와 달에게 내 할 일을 물었더니 구름도 흐른다 하였다 온 세월보다 가는 세월이 한참 짧아진 것에 대한 반항적 넋두리 가혹하다거나 불안하다거나 무두 벗어놓고 내려놓으면 생이 빛바래지는 않겠다

내 영상시 2023.02.27

스쳐가는 바람

스쳐가는 바람 한문용 난 스쳐가는 바람 잔디밭 풀향기 냄새 맡으며 달빛 고요한 밤 한 줌 공간에서 황홀한 색만 떠올리는 곪아터진 흘러간 세월의 향수 그래서 소름 돋는 도취의 향연에 빠졌었지 잎으로만 돋아나는 관목의 부활 보며 문득 지나가는 고혹을 붙잡고 앙탈하던 사랑의 심술이 스치듯 데굴데굴 돌아들고 울고 싶을 때 울지 못하고 웃고 싶을 때 웃지 못해 속끓는 사랑 멈추지 못하는 쾌락에의 집념은 언제나 그 잔인한 상념의 뿌리에 박혀 자꾸 무너져 내리는 작은 양심 난 스쳐가는 바람

내 영상시 2023.02.17

밤에 내리는 것들

밤에 내리는 것들 /한문용 밤안개 뜬 날 묘한 빛 뿜는 가로등 물안개 정혈로 피워 낸 안개꽃 탁자 위에 덩그마니 놓인 빈 커피잔 밤에 내리는 것들은 모두 외로움뿐이다 문밖에서 서성거리다 힘없는 달그림자에 수치스러울 때 주눅 들어 숨어버린 상념들 선잠에서 깬 추한 내 모습 밤에 내리는 것들은 모두 외로움뿐이다 숱한 밤을 홀로 지새우기 싫어 북적이는 해변을 거닐어도 녹여줄 사람 없이 얼은 가슴 밤에 내리는 것들은 모두 외로움뿐이다 허허로운 가슴으로 깊어가는 정월대보름달 푸념 달래주는 한 줄기 고삭부리는 요요한 바람 밤에 내리는 외로움이 내게 안겨준 가는 겨울

내 영상시 2023.02.09

화상

화상畵像 한문용 망막 안에서 아른거리다가 꿈속에서 말초신경에 머물다가 혈맥을 타고 열두 경맥을 흐르다가 마침내 주먹만 한 심장에 떡 버티고 눌러 앉아 또렷이 되새김질 하는 기억 당신이었어 당신의 고른 숨결이었어 실타래가 곱게 풀렸어 한걸음에 달려갔어 방울방울 탐스럽게 열렸어 북두칠성 옆에 누어 별을 헤었어 내 마음을 바잡고 가슴에 새하얀 인忍을 새겨 두고 일렁이는 심파心波를 잠재웠지.

내 영상시 2023.02.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