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그 길은
한문용
4.3 그 해
들녘에 가을이 가던 동짓달 초하루
삶밭 언덕에 오르는 것도 죄가 되었던
목동 여섯 사람을
‘산 빨갱이와 내통하고 있다.’는 더러운 굴레 씌워
죄 없이 사선에 세웠던 날
‘마을 책임자인 내가 살려내야 한다.’
“저 젊은이들은 죄가 없소이다.
산에서 풀을 먹이는 목동들이외다. 살려주십시오.”
그 말 한 마디에 내려친 청천벼락
“너도 빨갱이와 한통속이다.”
애국지사 독립운동가로
늘 정의의 삶을 사셨던 할아버지는
여섯 젊은이들과 함께 총살당해 숨을 거두셨습니다.
고귀한 의사자, 장렬한 죽음이셨습니다.
농중 출신 엘리트셨던 아버지께서는
50년 8월 19일
그 할아비에 그 아들이란 회색분자로 낙인찍은
가당치 않은 죄목 예비검속으로
정뜨르에서 총살당해 돌아가셨습니다.
총이 법이었던 세월에
생과부 되신 할머니, 어머니, 나 혼자 세상을 살았습니다.
흐르는 역사는 희망이라는데
아버지 시신도 거두지 못한 채
빛마저 비껴 간 4.3 71 주년
그날처럼 빛바랜 4월
골방에서도 영혼의 소리를 들을 수 있을까요
귓바퀴를 쫑긋 세우면 4.3 숨소리만 가지런합니다.
세월을 떠안은 기억들 손에 벼린 울림
삶의 기도가 천상을 흐를 때마다
세파에 찌든 얼굴나무 한 그루를 심었습니다.
살가운 봄볕에 나폴 거리는 꽃잎처럼
바람결에 떨어져도 아프지 않는 몸살
가버리면 그만인데, 보내버리면 그만인데
그러나 그냥 지나치고 싶지 않은 4월의 길은
동백꽃잎 떨어진 가슴시린 꽃길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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