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오름 걷는 밤길
한문용
서편에서 초승달이
당오름 숲길을 아스라이 수놓고
한가하게 수없이 널린 별무리 속을
카멜레온처럼
형형색색으로 변하는 미등을 켜고
걷는 조롱한 밤길
손 맞잡고 걸어 줄 임 멀리 있는데
팔짱끼고 걷는 행복한 부부 한 쌍 보며
애써 감춘 외면하고 싶은 앳된 마음에
살짝 치밀어 오르는 그리움
밤바람에 옷깃을 적셔
안온한 가슴에 불을 지른다.
제주의 소리가 모두 당오름에 모여
능선따라 구불어진 여요롭게 젖은 상념
아름드리 소나무 밑
즐비하게 늘어선 봄빛 치면한 숲길에
갓 깨어난 찔레꽃이 손등처럼 하얗게 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