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우봉 노래, 순수를 탐하다

천주교 소식

성지순례(1)

늘 봉 2010. 10. 27. 19:19

 

연풍은 갈매못에서 순교한 성 황석두 루가의 고향이며 최양업 신부의 발자취가 서려 있는 곳으로 초대

교회부터 신앙 공동체가 형성돼 있던 뿌리 깊은 교우촌이다.

연풍 마을과 문경 새재의 구석구석마다 선조들의 자취와 피의 순교 역사가 어려 있다.

연풍은 전체가 소백 산맥의 산릉에 속한 험지이고 문경군과 접경지대에 조령산과 백화산 등 소백 산맥의 주봉들이

높이 솟아 있다. 그만큼 험난하기에 예로부터 경기, 서울을 중심으로 일어난 박해를 피해 충청도와 경상도로

새로운 은신처를 찾아 나서는 순교자들의 피난의 요로로 일찍이 교우촌이 형성 됐었다.

남부 여대(男負女戴)로 보따리를 싸서 박해의 서슬을 피해 연풍으로 몰린 교우들은 새재라는 천험의 도주로를 이용해

여차 하면 밤을 틈타 험준한 산 속으로 숨어들어 새재 제 1·2·3관문 성벽 밑에 있는 수구문(水口門)을 통해

문경 땅을 넘나들며 모진 박해를 피할 수 있었다.

죄인 아닌 죄인, 도둑 아닌 도둑으로 한스럽게 살았던 교우들이 관문을 지키는 틈을 타 숨죽여 가며 드나들던

그 수구문은 지금도 그대로이다.

 순교자들이 처형된 치명터에 세워진 대형 십자가와 성모상, 사도 요한상 모습을 볼 수 있고, 

그 옆에 야외 미사를 봉헌할 수 있는 야외제대, 그리고 그 옆에 순교현양비가 있다. 

연풍 성지가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된 것은 1963년 연풍공소로 옛날 향청 건물을 사들이게 되면서 부터라고 한다.

3백년이나 묵은 이 건물을 매입할 당시만 해도 이곳이 순교 터가 되리라고는 아무도 생각 못했다.

하지만 매입 후 논과 집터 정리 작업 중에 박해 때 죄인들을 죽이는 도구로 사용된 형구돌이 3개나 발견됐다. 그리고,

1968년 시복식 후 황석두 성인의 고향이 연풍으로 드러남에 따라 성지 개발이 가시화 됐다.

1979년에는 평해 황씨 문중산에 묻힌 황석두 성인의 유해를 확인, 1982년 연풍성지로 이장하여 오늘과 같이 아름답게

모실 수 있었다.

매년 2만 여명씩 순례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는 연풍 성지에는 황석두 성인과 함께 충남 보령 갈매못에서 순교한 다블뤼 주교, 위앵 신부, 오메트르 신부 등 5인의 성인상과 함께 순교 현양비가 건립돼 있다.

또 최초의 한국인 주교인 노기남 대주교의 동상과 국내 최대의 십자가가 자리하고 있으며 사제관을 비롯한 기념관 건립이 마무리되어 예쁘게 가꾸어진 잔디와 참으로 잘 어우러진 성지였다.

 

작두날로도 막지 못한 황 루가 성인의 신심. 교수형 형구돌 앞에 목에 밧줄을 걸고 반대편 구멍에서 줄을 잡아당겨 죽이는 

잔혹한  형벌 앞에서도 신심을 잃지 않고 신앙을 증거한 거룩한 주검들 앞에선 저희는 눈시울을 적시며 묵상에 잠겼습니다.

하느님께 약속한 대로 일생을 교회에 바쳤던 헌신적인 삶을 사신 성인의 시신은 갈매못에서 홍산 삽티(부여군 홍산면 상천리)를

거쳐 고향 연풍으로 이장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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