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이 머물다 간 자리
한문용
태양이 머물다 간 자리
겨우내 살을 휘젓던 바람에
동백꽃 고운 흔적 접어놓고
별리 재촉하는 동박 그 산실에서
가뭇없이 여물 때
머뭇거리던 춘샘 점점이 흐릅니다.
태양이 머물다 간 자리
시린 삶과 환희의 일상을
소롯이 모아둔 그리움
어느새 모래성처럼 산산히 흩어져
설렘만 남습니다.
태양이 머물다 간 자리
하얀 시샘이 집을 짓고
남녘에서 오는 바람이
어느덧 홍매화꽃 피우면
진한 분홍빛 사랑만
아린 가슴에 파랗게 새겨둡니다
태양이 머물다 간 자리
잡히지 않는 애절한 순정의 그림자가
춘분의 기억 속에 자맥질 하면
미풍에도 찌든 자그만 여운 한 조각
영롱한 이슬이 되어
빈 허무뜨락에 아스라이 머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