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 앞에 서다
한문용
나무들이 바람 앞에 섰다
나도 바람 앞에 섰다
세상 모두가 바람 앞에 선다
꽃잎 흐드러저도 바람 앞에서 시들고
영원히 붙어 있을 것만 같은 이파리도
바람에 떨어지지 않는가
꺾이고, 깨지고, 날아간다
유혹에 이끌리는 인간
속 좁은 인간들을 비웃으며 태연히
눈꽃 피는 하얀 겨울밤과
개나리 익어오는 노란봄과
달맞이꽃 피고 지는 별무리 빛나는 여름밤과
사각거리는 숲 속의 가을밤을
잊지 않고 노래한다
때때로 꿈이 주렁주렁 열리고
독화살처럼 쏘아대는 창끝 같은 바람도
때때로 고상한 빛을 낸다
나는 오늘도 바람 앞에 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