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우봉 노래, 순수를 탐하다

수필

쌍무지개 뜨던 날

늘 봉 2014. 3. 20. 08:24
    쌍무지개 뜨던 날 / 늘봉 한문용 주님, 참으로 미련한 저를 보세요. 주님, 노래가 좋아서 음악이 그냥 좋아서 입교하면서 부터 줄 곳 성가대에 몸담은 지 벌써 5년입니다. 고요의 성가로 기도를 하고, 합창 연주회 때 감동의 박수를 받았던 그 감격들이 파노라마처럼 떠오릅니다. 환희에 가득 찬 나날들에 사랑과 힘과 열정이 줄줄 넘쳤던 성가대가 세월이 흘렀음인가 모자란 제가 성가대장이 되면서부터인가 조금씩, 조금씩 대원의 수가 줄더니 10명도 채 되지 않은 덩그런 성가대가 되고 말았습니다. 마음 한켠 기웃거리던 묵은 감정의 찌꺼기들을 흘려보내고자 오늘도 서우봉올레길을 묵주를 들고 걸었습니다. 머리 속에는 온통 부활절 전례에만 신경이 곤두섰습니다. 연습하러 오시는 대원의 수는 고작 몇 명 뿐 입니다. 막막한 가슴을 치며, 치며 주님께 의지할 수밖에 없음을 고백했습니다. 그분의 맑은 향기처럼 온화한 미소처럼 성가대의 기도가 다시 해질녘의 풍경소리로 나지막하게 되울림으로 돌아올 수는 없는 것인지요. 혹자는 "성가대에 신경쓰지맙써 다른 사목활동에 신경씁써"라고 말합니다. 문풍지 떨림이 이러할까! 가슴 구석에 남아 있는 편린이 커다랗게 클로즈업되면서 풍선처럼 부풀어 오르는 쓰라림에 절로 눈물이 나서 눈이 감겼습니다. 성가대에 앉으면 이 자리에 있음이 축복이요, 은총이요, 편안한 쉼터였는데 말입니다. 주님, 제가 너무 부족하고 우둔함이 족히 하늘에 닿아 있음을 압니다. 모자라오니 주님께서 채워주셔야지요. 차라리 너는 재주 없으니 그만 두라고 하시든가요. 그래서 다른 일을 하라고 말씀 주시든가요. 주님, 저를 붙잡아 주십시오. 쌍무지개가 뜨면 희망이 싹튼다고 합니다. 동녘에 뜬 쌍무지개를 바라보며 주님께 간구했습니다. ‘온전히 저희 조천성당그라시아성가대를 다시 채워주십시오.’ 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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