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우봉 노래, 순수를 탐하다

수필

병실에서

늘 봉 2014. 7. 24. 09:45

      --병실에서-- 늘봉 / 한문용 4년 전 일게다. 서우봉올레길이 마냥 좋은 나는 창창한 파란 바다가 여유롭게 펼쳐진 낭만을 호흡하면서 새봄이 절절이 녹아든 풀빛동산에서 제 가족 돌보기에 여념 없는 새들의 부산한 날갯짓 소리를 뒤로하고, 조금은 가파른 숲 속 길을 걸을 때였다. 숨이 차다고 느끼는 순간 갑자기 가슴이 찢어질듯 참지 못할 고통이 온 몸을 휘감았다. 털썩 바위에 주저앉아 한참을 숨을 고르고 나서야 비로소 통증이 가셨다. 일시적인 ‘현상이겠지’ 생각하며 다시 언덕길을 오르려 할 때 또 그와 같은 현상이 반복되지 않는가. 잠시 쉬고는 아픔이 멈추자 더는 산행을 계속할 수 없어 개운치 않은 기분을 억지로 쓸어내리며 집으로 돌아왔다. 산행이 싫어서가 아니었다. 일상 바쁜 스케줄 속에서 생활하다보니 올레길을 꼭 반년이나 잊고 살았으니 얼마나 핑계 같은 내 일상이었을까! 5학년 과학 전담교사로 근무하던 내가 2학년 강◌◌ 선생님께서 갑자기 육아 휴직하시는 바람에 2학년 담임을 맡게 되었다. 까만 눈동자들이 여간 귀엽지 않은 아이들, 갓 1학년 때를 벗어나 이제 교사의 말 귀를 훨씬 잘 알아들을 시기인 아이들이 싫지만은 않았다. 담임 수당도 25만원을 더 받을 수 있어서였다. 즐거운생활 시간이었다. 아이들을 데리고 운동장에서 구룹 달리기를 하는데 같이 뛰던 나는 찢어질듯 아픈 가슴의 통증으로 그냥 주저앉고 말았다. 서우봉올레길의 기억을 떠올리며 예사 일이 아님을 직감한 나는 아픈 기색을 애써 감추고 수업이 끝나자마자 제주대학병원 심장내과 진료실을 찾았다. 아픈 증상을 교수님께 말씀드렸더니 협심증 같다는 말씀을 주시면서 늦지 않게 병원을 찾은 게 천만다행한 일이라는 말씀을 곁들이신다. 그제야 나는 협심증이란 병이 심상치 않은 병임을 알게 되었으니 참 바보 같은 건강관리를 하였음을 후회하였다. 더 늦으면 심근경색에 이르러 불구가 되거나 몸을 움직일 수 없게 마비가 되거나 사망에 이를 수도 있다는 교수님 말씀에 머리카락이 쭈뼛이 섬을 느꼈다. 심장조영술이 시작되었다. 사타구니 쪽 동맥을 2mm의 가는 관을 혈관을 따라 가슴 부분 까지 밀어 올려 영상으로 혈관의 막힌 부분을 찾아내고 막힌 부분을 자루처럼 생긴 선텐을 집어넣는 시술이다. 시술이 혹 잘못되면, 아프고 고통스러우면, 갖가지 생각이 머리를 엄습해왔다. 살아있음으로 내게 온 시련, 그래도 열심히 뛰는 심장을 보면서 아직 버리기엔 너무나 아까운 생명에의 애착심, 주님께 더 가까이 가야한다는 타는 내 가슴의 불이 ‘괜찮아, 괜찮아, 주님께 의탁할거야’ 믿음 하나로 다시 일어서 걸을 수 있다는 결심을 굳힐 수 있었다. 눈을 감았다. 입속으로 가만히 묵주기도를 바치다 어렴풋이 잠이 들었나보다. 주치의 교수님께서 빙그레 웃으시면서 성공적으로 시술을 끝내셨다고 말씀하셨다. 사타구니에는 두툼한 모래주머니로 싸맸다. 붓는 것, 지혈방지를 위한 조치라고 했다. 걸을 수 없었다. 아니 걸어서는 안 된다고 했다. 아물기 전에 다시 터져 피가 날 수 있기 때문이다. 부분 마취가 풀리기 시작하니 너무 아팠다. 고통의 날은 그렇게 지났다. 아픔이 어느 정도 가시고 평소보다 상쾌한 아침이었다. 장엄한 한라산이 눈 아래로 들어온다. 가벼워진 몸을 느끼며 호흡하는 햇빛, 주님께 감사 기도를 바쳤다. 의술의 놀라운 발전을 몸소 느끼며 퇴원해도 된다는 주치의의 말씀이 너무 고맙게 들렸다. 쏜살같은 세월, 온 몸을 주님께 맡긴 내 일상에 비상이 걸린 건 다시 시작 된 가슴앓이였다. 지난 번 시술 때 다시 혈관이 좁아질 수 있다는 교수님 말씀을 떠올리며 병원으로 향하는 내 마음은 천근의 무게 같은 버거움이었다. ‘한 번 경험한 아픔이아니던가! 다시 좁혀진 혈관을 조영하시면서 시술해야한다고, 다시 선텐을 집어넣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입원 수속절차를 밟자마자 시술대에 올라가서 누웠다. 이번에는 손 동맥을 뚫어 그 가는 관을 심장까지 집어넣었다. 내게 닥치는 시련을 주님께 원망하였다. “주님, 저에게 이런 슬픔을 주시는 이유가 뭡니까? 고통이 너무 커서 주님께 다가가기가 두렵나이다. 저를 구하소서. 평생 주님 곁에 있겠나이다.”하며 묵주기도를 바치는 내 손이 떨려 옴을 느낀 것은 내 눈에서 흘러내린 눈물 때문이었다. 무사히 시술을 마쳤을 땐 온 몸이 뻐근하고, 나른해서 그냥 깊은 잠에 빠져버렸다. 1차 시술 때처럼 이튿날 퇴원하였다. 약을 챙기고 작은 짐을 챙겨서 집으로 돌아가는 발걸음이 이렇게 무거울 수 있었을까? 삶의 무게, 내 생에 매인 굴레, 그래서 조금씩 더 조급해지는 마음을 지워낼 수 없었다. 그 인지상정의 범주를 벗어날 수는 없을까? 수십 번을 자문자답하였다. 오색으로 물든 낙엽이 가을 하늘을 수놓고, 나풀거린다. 낙엽은 분명히 찢기고, 사라진 내 세월의 흔적과도 같은, 내려놓으면 편해지련만 붙잡기에 안달하는 내 자신의 모습을 투영하고 있었다. 세월이 참 많이도 흘렀다. 그 세월에 희석되어 조금씩, 조금씩, 내 삶도 주님의 품으로 녹아들어간 것일까! 그러던 어느 날 무슨 사단인가? 지휘자님의 어쩔 수 없는 사정으로 이에 내가 본당의 성가대지휘를 맡게 되었다. 서투른 솜씨 짧은 경험이 날 옭아매었다. “주님, 어찌하시려고 능력 없는 저를 쓰십니까?” 수십 차례 다툼의 기도를 하고는 용서를 빌고 또 빌었었다. 그 때마다 주님께서는 아무 말씀도 주시지 않으시고 나를 바라보기만 하셨다. 7월 13일 교중미사 시간이었다. 내 몸이 주위 환경 변화를 감당할 수 없음인가. 어지럽고 구토증이 일어서 밖에서 시원한 물 한 컵 마시고 잠시 숨을 고른 후에 의자에 앉자마자 신체의 수평적 리듬을 더는 유지하지 못하고, 그만 주님 앞에서 쓰러지고 말았다. 손가락이 따끔거리고, 발가락이 따끔거려서야 의식을 회복한 나 성당 안은 순식간에 고요 속에 묻혔다고 한다 119응급차량에 몸을 싣고 제주대학병원에 도착하여 응급처치를 하였다. 내가 만일 아무도 없는 곳에서 쓰러졌으면 과연 내가 살 수 있었을까? 주 하느님께서 살펴주시고 살려주셨음에 이 한 목숨 주님께 봉헌하리라는 다짐을 하면서 감사 기도를 드렸다. 검사 결과는 양호한 편이었다. 내가 쓰러진 원인은 정확히 소상하게 밝혀지지 않았지만 갑자기 추워지거나 더워지거나 공기가 탁했을 때에도 일어난다고 하셨다. 어쨌거나 뇌에도 심장도 이상이 없음을 확인한 것이다. 혈압이 조금 높은 것은 약과 음식과 생활의 건전한 요법으로 능히 다스릴 수 있을 터였다. 나를 위해 기도해 주신 형제자매님들의 기도의 힘이 오늘 나를 있게 해주신 것을 잘 알고 있다. 지난 8일 동안의 입원 생활은 나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 주었다. 오로지 내가 할 일은 더 주님께 다가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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