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우봉 노래, 순수를 탐하다

수필

이제야 첫돌 지났어요.

늘 봉 2010. 9. 20. 08:53

첫돌 지났어요.

내가 난생처음 조천성당을 찾은 것은 박 루시아 자매님의 집요한 권유와 설득과 강압(?)에서였다. 나와 박 루시아 자매님은 작년 동광초등학교 동료 동학년 교사로 재직하고 있었는데, 하루를 멀다하고, 만날 때마다 성당을 다녀 보라고, 다녀보면 좋은 것을 알 수 있다고, 집요하게 설득하시고, 권하시는 거였다. 그만큼 권했으면 싫증도 날만할 일일 터였다. 그런데도 거절하면 거절할수록 그분의 집요함과 권유의 농도가 더했으면 더했지 줄어들지가 않았다. 그는 어느 날 나를 보시고는 다시 예의 장황한 설득을 시작하였다. 특별한 한국의 문화적 전통성과 유교 사상으로 500년간 내려온 부모님 공경 사상의 특수성을 인정하셔서 우리 천주교는 제사 명절을 지낼 수 있도록 교황청의 내리신 허가사항으로 개신교 보다 마음 편하게 현실적인 신앙생활을 할 수 있으니 돌아오는 5월 24일 교중 미사에는 꼭 뵐 수 있기를 소망한다는 말씀을 간곡히 주시는 것이었다.

?대학생 시절까지 예장을 다녔던 내가 아니었던가! 어쩌면 이 기회가 예수님께서 내게 주시는 마지막 선물일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머리를 휙 스치기도 하였지만 지난 40여년을 내 생활 방식에 젖어 갈대처럼 흔들리는 대로 살았고, 방종한 생활이 오히려 자유롭고 편하다는 타성에 젖어 온 내가 섣불리 박 루시아 자매님의 권유를 온전히 받아드리기에는 이미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무감각해진 나에게는 무리였던 게 사실이었다. 지나 온 무수한 세월의 뒤안길, 신앙 생활과 담을 쌓은 지 오랜 나였기에 한낮 사치에 지나지 않았던 설득(?)이었음으로......

5월 23일 토요일 퇴근길에 내 차에 같이 동승하게 된 박 루시아 자매님의 예의 간곡하신 설득은 귀가 따가울 지경이었다. 잔잔하고, 고운 박 루시아 자매님의 목소리가 그렇게 시끄럽게 들리기는 처음이었다. 장황한 그 권유의 목소리가 더는 듣기 싫어서 엉겁결에 내일 성당에 10시 30분까지 가겠다고 말해버렸다. 엎질러진 물이었다. 약속은 약속이었다. 내 성격상 얼떨결에 맺어진 약속이라도 그것을 지키지 않으면 그것이 늘 내 마음 속 깊은 곳에 아가리를 틀어대고 들어 앉아 내 행동을 제약하는 요인으로 두고두고 내 자유 분망한 일상생활에 지대한 영향을 끼칠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었다. 내가 저지른 실수를 누구에게 탓하랴.

?할 수 없지 내일 하루 한 시간만 참아내자. 그러고 나서 홀가분하게 성당을 나와야지.?

약속도 지키는 것도 되고, 더는 박 루시아 자매님이 성당을 강요하지 않겠지.?혼자 픽 웃었다. 이렇게 간단히 해결될 일을 왜 고민을 하였을까! 그러나 그 일은 내 생애에 엄청난 변화를 몰고 온 착각의 시작이었음을 알리는 서막이었다.

5월 24일 미사가 무엇인지 어떻게 해야 하는 건지도 모르는 나에게 강제로 주어진 한 시간은 참으로 긴 시간이었다. 두루마기보다 더 헐겁고 긴 옷을 입으신 신부님이 마치 커다란 벽이 되어 내 앞을 가로막고는 내 숨통을 옥죄어오고 웅장한 분위기에 간간히 우렁차게 들려오는 교우님들의 기도소리는 그야말로 내 정신을 송두리째 빼앗아 가는 것이었다.

정신 차려야지 몇 번이고 다짐 했지만 전혀 들어보지도 않은 성가 부름 소리와 기도 소리가 한데 어울려 뇌의 인식 기능을 차단해 버리고, 어떻게 미사가 마무리 되었는지 고작 한 시간이 일 년 365일 보다 더 긴 시간인 것 같은 착각에 빠져버린 나는 어쨌든 이 지옥 같은 장소를 빨리 벗어나야 한다는 생각에 미사가 끝나자마자 무섭게 밖을 허둥지둥 나오는데 누가 나를 불러 세우는 것이 아닌가!(다음 내용은 내일 이후 이어집니다.죄송합니다.)

입교 원서를 쓰셨으니 신부님과 전체 면담 시간에 참석해야 한다는 것과 교리 받을 요일을 정하고, 매주 한 번씩 교리 공부를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학생 때도 그렇게 하기 싫었던 공부를 이 나이에 다시 해야 한다니 청천벽력과 같은 소리로 들리는 것은 당연하였다. 정말 내가 입교 원서에 서명했을까? 뭔가 종이를 받고 이름을 쓴 기억은 확실히 났지만 그것이 입교원서인 것을 사전에 읽지 못했던 자신이 원망스러울 뿐이었다. 혼란스러운 마음과 곤혹스런 마음이 교차되면서 한숨만 저절로 나왔다. 오늘 괜히 왔구나 싶었다.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주어 담지 못하는 물이었다. 약속은 꼭 지키며 살아야 한다는 것이 나의 생활 좌우명이다. 이것도 약속인 것을 어찌할 것인가!

고개를 살레살레 흔들며 집으로 돌아온 나는 앞으로 이 지독한 난관을 극복할 궁리를 하느라 시간가는 줄도 몰랐다. 오직 나만을 위하여 60평생을 고통과 외로움 의 세월을 잘도 견뎌 살아오신 어머님을 설득하는 것도 어렵고 힘든 일임에랴.

6.25사변 때 예비검속이라는 굴레를 씌워 지금의 비행장에서 아무 죄도 없는 아버님을 무참히 총살한 지 예순 해, 그 인고의 고통을 잊기 위한 방편으로 불교를 믿고, 의지하며 불교의 교리에 익숙하신 어머님을 설득해 내는 일이 가장 힘든 일일 것이었다. 천주교에 다녀보겠다는 말을 꺼냄과 동시에 그 완고하신 성격으로 화를 끝내 못이겨 쓰러지시기라도 하는 날엔 큰일이었다. 어머님의 말씀을 거역한 적이 거의 없었던 나는 천주교는 절대 아니 된다는 말씀 한마디가 어머님 입에서 거침없이 나올 것만 같은 생각에 참으로 난감한 시간만 자꾸 흘렀다.

처음 받아보는 수요일 교리는 온갖 잡념 상념 때문에 아예 귀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주님의 기도, 사도신경도 예전 예장의 것은 아니었다. 영광송, 성모송 등 예장에는 없었던 특별한 새로운 기도가 내게로 다가 온 것은 한 참 후의 일이었다.

어머님께 거짓말을 하고 성당을 찾았으니 벌을 받아도 크게 받을 일일 것이었다집에 돌아와서 책을 펼쳤지만 눈에 들어오는 건 종이 뿐이었다. 눈을 감았다. 감으면 딴 세상이 보일 것만 같았다. 현실을 도피하기 위한 곳은 어디에도 없었다. 간간히 어머님 방에서 귀에 익은 반야심경 소리만 들린다.  거울을 보았다. 잘생긴 얼굴은 그 어디에도 없었다. 즐거움을 잃어버린 얼굴엔 어느덧 휑한 주름살만 주저리주저리 열리고, 눈 가장자리는 움푹 패어 망가진 세월을 말해주는 보기 민망한 얼굴이었다.

바람이 부는 창을 열었다. 5월 하순이라고는 하지만 제법 찬 공기가 얼굴을 할퀴고 지났다. 헛 웃음이 절로 나왔다. 씁쓸한 마음 한구석에 아련한 가로등 불빛을 주워 담았다. 그래도 커질대로 커져버린 빈 공간은 그 무엇으로도 채울 수 없었다. 그냥 소리라도 지르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슬금슬금 어머님 눈치를 보며 수요일 마다 교리를 받기 시작한지도 한 달을 훌쩍 넘겼다. 주님의 기도, 사도신경의 내용은 개신교의 내용과는 많이 달라서 귓가엔 옛날 외워두었던 기억만이 나의 대뇌에 꽉 들어박혀 외기가 여간 어렵지 않았다. 그래도 교리선생님께서 반드시 외워야한다는 그 지엄한 명령을 어찌 어길 수 있있을 것인가! 책상에 앉아서 강의를 들었던 것은  대학생 때 그러니까 40년 전의 일이다.  딱딱한 의자에 앉아서 하기 싫은 공부를 했던 기억을 떠올리니 (교리를 받는 예비신지가 15명으로 기억된다.) 공부가 제대로 될 턱이 없다. 그래도 약속은 지켜야 한다는 일념으로 하루도 빠지지 않고, 참석하였다. 

   아버님 기일은 한창 여름이다. 음력 7월 초닷샛 날 제사를 지낸다. 더위에 제삿상을 차리시는 어머니를 생각하면서 매번 돌아오는 이 날은 날  불효자로 만드는 날이다. 며느리가 있어 제삿상을 차려주는 집안을 보면 행복이 바로 저기에 있구나 하고 매 해 실감하곤 한다. 집사람이 집을 비운지도 벌써 여러해가 지났다. 나는 지독히도 마누라 복 없이 태어난 운명을 지녔을지도 모른다. 지금은 주님께 의탁하며 오히려 편한 마음으로 내 안에서 주님을 모시고, 내 안의 기쁨을 창출하면서 스스로 감사하는 마음으로 한 세상 살고 있으니 부러울 게 없지만 그 땐 삶이 곳 괴로움 자체가 아니었던가!

 과로 때문 만은 아니었다. 평소 걷기가 조금 불편하기는 했어도 당신 스스로 병원이며 노인회관엘 잘도 다니셨던 어머님께서 제사 다음 날 밤 갑자기 쓰러지신 것이다. 구급차를 부르고, 외과 전문 당직 병원을 알아보니 신제주 한라병원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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