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우봉 노래, 순수를 탐하다

수필

(2)이제야 첫돌 지났어요.

늘 봉 2010. 9. 20. 08:57

어머님을 중환자실로 옮기고, 닝겔과 진통제 주사를 계속 투여하였다. 잛은 여름밤이 이렇게 길 수도 있구나 싶었다. 날이 밝는대로 종합 검사를 해야한다. X-RAY, MRI,혈액 검사 등 무려 여섯 가지를 검사하고, 검사를 끝낸 시각이 12시가 좀 지나서였다. 어쩌면 주치의로부터 검사 결과를 안듣는 편이 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만 들 정도로 심각한 상태였기 때문이다. 어머님 몰골은 뼈만 앙상하고,옛날 그 고왔던 모습은 이제는 어디에도 찾을 수 없었으므로......  

  검사 결과는 거의 절망적이었다. 협착증,골다공증에의한 척추골절, 당뇨까지 겹친 그야말로 최악의 상태였다. 간호사에게 병실을 옮겨달라고 부탁하였다. 10인 1실은 그야말로 지옥 그 자체였다. 오히려 그 병실에 계속 있다가는 깨끗한 어머님 성격에 화병까지 생긴다면 더는 회복하기가 어려울 것만 같아서 입원비를 더 내는 한이 있더라도 넓고, 바다가 보이는 시원한 병실을 주문하였다. 다행히 5인 1실이 한 군데 비어 있어서 그리로 모셨다. 한결 마음이 놓이기도 했지만 병세가 호전 될지는 두고봐야 알겠고, 최소한 1년 이상 치료해야 할 뿐만 아니라 6개월 입원에 수술까지 해야한다는 주치의 말씀은 그렇지 않아도 내 스스로 택한  엄청난 현실의 장벽 때문에 지칠대로 지친 희망 없는 삶에 기름을 부은 결과로 다가왔다.  더욱 고통인 것은 어머님 대소변을 받아내는 일이었다. 음식도 누운채로 먹여드려야 한다. 간호사를 부르는 것도 한 두번이 좋을 것이었다. 과일이나 그 밖의 맛있는 음식 서비스를 제공해도 그 시 뿐일 터 결국 내가 모든 것을 해결해야만 하였다.  

  난생 처음 예수님을 찾았다. "주님, 저가 왜 이렇게 아픈 고통을 당해야 합니까?  큰 죄를 짓지도 않았습니다. 주님, 저에게 단란한 가정은 사치인 걸 압니다. 제 사람을 돌려달라는 말씀은 욕심입니다. 그러나 어머님의 고통은 주님이시면 멈추게 할 수 있으십니다. 저에게 용기와 힘을 주십시오. 주님을 의지하렵니다. 그러면 최소한 저의 기도에 응답해 주심이 참으로 마땅한 일 아니겠습니까? 이 어려운 현실을 극복할 수 있는 지혜도 주십시오. 이건 오로지 어머님을 위한 저의 작은 소망일 뿐입니다."

  눈물이 다 났다. 할머니께서 돌아가실 때에도 이렇게 많이 울지 않았었던 기억을 떠올리며.......

  병 간호 도움이를 돈을 주고 빌어볼까 하는 생각도 하였지만 어머니를 내가 온전히 돌보아 드려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건 하느님이 섭리인지도 모를 일이었다. 용기가 솟았다. 어머님 대소변을 내가 직접 해결하기 시작하였다. 왠지 이상하지도 부끄럽지도  않았다. 교리를 받는 중에 모니카 자매님 유혹에 빠져 성가대에 이름을 올린 것도 이때 쯤으로 생각된다. 아뭏든 어머님 병 간호 중에 우리 집 아이(당신의 손녀 딸)를 잠시 병원에 두고, 교리며 성가대 연습이며 거의 빠지지 않고, 참여할 수 있었던 건 내 성격 탓이기도 하였지만 지금 되돌아 보면 주님께서 온전히 나를 당신의 도구로 쓰실 부르심이라고 생각되었다.

오늘도 주치의께서는 수술을 권하셨다. 수술을 받고 협착증이 완치되고 허리 골절부분도 쾌유가 된다면 돈이야 있다가도 없고 없다가도 있는 것을......!

  그냥 병원에 맡기기만 하면 될 일이었지만 꺼림직 한 것은 노인네이기 때문에 25%의 후유증이 생길 수도 있다는 말에는 자신이 없었다. 병원에서의 인술은 영리의 그늘에 가려 환자의 머리수를 돈으로 환산하는 작금의 현실을 개탄한다는 어떤 사람의 얘기를 차치하고라도 30%에도 못 미치는 숫자가 내 눈앞에 클로즈업되며 두려움으로 각인되어 다가왔다. 수술은 절대 불가하다는 논리적 모순을 인정은 하면서도 가당치도 않은 내 지독한 옹고집이 끝내 수술을 포기하게 만들었다. 간호사나 의사들은 나를 어떻게 볼 것인가는 생각하고 싶지도 않았다.

  하루 한 번 씩 병원 벤치에 앉아서 어머님을 위한 기도를 주님께 드렸다. 교리 받는 시각과 성가대 연습 시각도 철저히 지켰다. 외롭고 고달프면 묵주기도를 바쳤다.

  다행히 방학이 되어 병실을 지키는 시간도 많아졌다. 가끔씩 딸아이들이 할머니 병간호를 와 줄때는 나만의 시간을 온전히 예수님께 의탁하는 시간으로 어김없이 성경책 시편을 펴서 읽었다. 그리고 "기도에 응답해 주십시오. 주님,"간절히 빌었다.

  참으로 절박한 심정이었던 까닭에.........!

'신앙은 어려움 속에 다듬어지고 키워진다..는 말씀이 새삼스럽게 내게 다가오기 시작하면서 믿음으로 이 어려움을 극복하리라.

"주님께 저와 어머님을 맡기오니 구원의 은총을 내려 주십시오. " 간곡한 절규를 토해내었다. 교리를 받는 예비 신자님들도 어머님 병환이 낫기를 기도해 주셨고, 성가대 대원들도 어려움을 극복하게 해달라는 기도를 해 주셨다. 눈물겹게 고마웠다. 내가 누구에게 이런 은혜를 받아 본 적이 있는가. 온전히 사랑 안에서 주님께 봉헌하는 생활을 하고 계시는 교우들이 있었기에 삶의 용기가 샘이 되어 솟았다.

어머님의 건강은 기적적으로 달라지기 시작 했다. 허리에 보호대를 차고앉아서 식사하기 시작 했고, 화장실도 손잡고 다닐 수 있는 정도까지 호전되었다. 160 이상을 오르내리던 당뇨 수치도 130정도로 안정 되면서 서서히 건강을 회복하기 시작하였다. 틈만 나면 어머님을 설득하였다. 어머님 병이 나아지는 것은 제가 매일 하느님께 기도한 응답의 은혜라는 말씀을 드리는 중에  병실에 같이 입원해 계신 분 중 독실한 천주교 교우님이 한 분 계셨는데 같이 거들어 주셨고, 데레사라는 본명을 지니신 작은 이모님도 오셔서 주님께서 문용이 신앙심과 효심에 감복해서 은총을 주신 것이라고 말씀하시자 목석 같으셨던 어머님 마음도 서서히 녹아들어가고 있음을 직감하였다.

  병실 생활 40여일 만에 퇴원 수속을 밟았다. 참으로 길었던 시간이었다. 허리 보호대는 일어날 때만 차도되었다. 6개월이 지나서 허리 보호대를 풀었다. 눈물이 핑 돌았지만 애써 참았다. 이젠 거실에서도 당신 스스로 지팡이를 짚고 화장실 출입을 하시고, 내게 눈치를 보일까봐 교중 미사 때에는 당신 스스로 점심을 챙겨 드실 수 있게 까지 호전 되었다. 더욱 천행인 것은 요양 신청 결과 2등급으로 받아드려져서 요양사가 월요일에서부터 토요일 11시에서 오후 2시까지 잔심부름을 하고 가신다. 식사 차려주기, 집안 청소하기, 빨래하기, 목욕 시켜주기 등 잡다한 일을 보아주신다. 얼마나 다행스럽고, 고마운 일인지 모른다. 주님께서 온전히 내개 주신 사랑의 선물이다. 요양비는 한 달에 8만 여원을 내는데 전체 요양 금액의 85%는 국가에서 내 주신다.

  어머님께 간곡히 말씀드렸다. 교리를 받으시라고, 이모님께서도 거들어 주셨다. 세례 받으면 주님께서 내리시는 은혜로 우리 모두 천국 땅을 밟을 수 있다고,

  어머님께서도 품성이 달라 보이는 아들의 행동에서 비로소 마음이 움직인 것이다. 1월 10일 영세 받는 날 나는?주님 저를 온전히 당신 손에 맡깁니다.?머리 숙여 고백하였다. 교회에서 나를 부르면 바로 달려가겠노라는 다짐도 잊지 않았다. 저를 당신의 도구로 쓰십시오. 하고 서슴없이 말 할 수 있는 자신감도 생겨났다. 또 맡기면 해내리라는 굳은 결심도 하였다.

어머님께서도 일주일에 두 번 교리를 받으신다. 제법 사도신경, 성모송, 영광송, 주님의 기도 등을 외우려는 노력을 하신다. 나는 요즘 행복감으로 들떠 있다. 주님께서 베풀어 주신 은혜를 오로지 주님께 갚아드려야 할 것이 아니겠는가!

  이제야 첫돌이 조금 지났다. 내 안의 삶은 주님을 떠나서는 생각할 수 없다. 늦둥이 새내기지만 절제하고, 온유하며, 굳센 신앙의 정신으로 주님을 닮아가는 사랑의 삶을 살아갈 것이다.

 

후기 : 지금까지 저의 보잘 것 없는 글 읽어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저는 모든 것을 다 털어내었습니다. 말하기 부끄러운 저의 가정환경과 현재의 저희 피폐한 모습을 적나라하게 비추어 보여드렸습니다. 교우님들 가정에 주님께서 함께 하시기를 기도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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