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우봉 노래, 순수를 탐하다

내 영상시 688

화상

화상畵像 한문용 망막 안에서 아른거리다가 꿈속에서 말초신경에 머물다가 혈맥을 타고 열두 경맥을 흐르다가 마침내 주먹만 한 심장에 떡 버티고 눌러 앉아 또렷이 되새김질 하는 기억 당신이었어 당신의 고른 숨결이었어 실타래가 곱게 풀렸어 한걸음에 달려갔어 방울방울 탐스럽게 열렸어 북두칠성 옆에 누어 별을 헤었어 내 마음을 바잡고 가슴에 새하얀 인忍을 새겨 두고 일렁이는 심파心波를 잠재웠지.

내 영상시 2023.02.01

새벽

새벽 한문용 내 의식意識 세월이랑 놀다온 오늘 금세 가버린 시간 위로 솟아오른 태양 계묘년의 아침은 여명의 빛을 쏜다 한겨울에도 바쁜 들녘 아낙네 손짝들 늘 그렇듯이 새벽바람 맞음 소중한 일상인 걸 귀한 생 탐하는 새벽별이 주황빛 창공을 이고 가는 시각 은은한 종소리를 가르며 언덕을 오르는 인걸들 모습 살갑다 바람 죽인 눈이 나풀거리며 내려 추는 춤사위 앞에 온전히 내려딛는 새벽 "Gabriel's oboe - Nella fantasia"

내 영상시 2023.01.07

세월 그 수레바퀴

세월 그 수레바퀴 한문용 그냥 가슴이 먹먹합니다 터질 것 같습니다 짧아진 하루 갑자기 멈춰버린 세월이라니요? 향기 없는 마른 눈에서 찐득한 핏물이 잔뜩 고였습니다 악마처럼 늘어선 빌딩 숲 그 사이에서 들리는 처참한 비명소리 어른들은 뒷짐만 지고 살려달라는 아우성 따윈 거들떠보지도 않았습니다 비통하게 다시 되풀이 되는 역사 겨레여 분노하라

내 영상시 2022.11.20

울고 싶은 날

울고 싶은 날 한문용 별빛 촘촘한 하늘에서 그대별 찾지 못하는 날 나는 울고 싶어집니다 덤불 속 홀로 핀 나리꽃 아픔이 눈에 저미어 오는 날 나는 울고 싶어집니다 숨 막히는 깡마른 날 안간힘 쓰며 쓰며 담벼락을 기어오르는 힘 부친 달팽이 모습이 보이는 날 나는 울고 싶어집니다 갯바람에 마구 부서지는 파도가 아픈 바위를 때리는 날 나는 싶어집니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보다 더 애련한 에는 사랑을 가슴 속에 까맣게 묻어둬야 하는 날 나는 울고 싶어집니다

내 영상시 2022.09.25

가을을 엮어

가을을 엮어 한문용 상현달 길을 달음질치다보면 작은 소리에도 멈추는 귀뚜리 노래 소리 앞에 초저녁에서부터 내려선 가을 문턱 온밤 붉은 이파리만 뜨락에 고즈넉이 걸터앉았다 엊그제 떠난 물만 먹던 하늘 섬 아래 거저 준 소슬바람을 찌르르 벌레소리 때문에 비워 둘 수밖에 없는 기억 살짝 벌어진 틈새로 구름 오듯 와닿는 가을소리 낙엽소리

내 영상시 2022.09.20

달무리

달무리 글 / 한 문용 불꽃처럼 피어나 다 태우지 못한 안타까움 채양 없는 구멍 뚫린 모자를 쓰고 눈썰미보다 작은 공간에서 시간을 붙잡고 동심원을 그린다. 달맞이꽃 이슬 선율에 밤안개처럼 스멀스멀 기어드는 적막한 기운 달무리 안에서만 빛나는 고독한 빙화(氷花)의 미소에 눈시울이 뜨겁다. 달무리여 그대는 석고상 그 창백함보다 더 진한 외로움을 타고 났을지라도 동녘에서부터 달려오는 빛의 향연에 넉넉한 잠의 둥지를 틀 수 있는 조용한 기다림이 있구나. 사랑으로 다가올 잔잔한 사색의 여운 네게서 배운다.

내 영상시 2022.06.27

향연의 조각들

향연의 조각들 詩 늘봉 / 한문용 휘잉 등줄기를 타고 흐르는 널부러진 고독을 동이 째 쓸어 담은 남촌 바람에 울컥 치솟는 그리움 견디지 못해 몸 뒤척이다 무너지는 목소리가 들릴 때만 여자인 그녀 불꽃 내려 앉아 태우는 사랑의 향연 황홀한 연무로 설친 선잠에도 씨앗 여문다. 잠간 새 공간 속 만남 하늘 삼킨 어둠이 꺼이꺼이 소리 지르고 달려오는 날이면 삶에서 잘게 도막난 편린 내게 꿈꾸며 다가오는 향연의 조각들 편린 : 한 조각의 비늘 사물의 극히 작은 부분을 일컫는 말

내 영상시 2022.06.19

만나지 않았어도

만나지 않았어도 사랑에 빠지면 그 끝은 무엇일까 어쩌다 티격태격 갈등의 아픔도 지나고 나면 세월 속 잔해들도 서서히 내려앉느니 오늘도 기댈 사람 곁에 없어 인생 내리막에 번뇌로 물든 상념쪼가리만 하얗게 엉겨 붙어 차오르는 연민 따라 솟아오르는 분노 가당찮은 시간들에 퍼붓는 욕설은 비가림막에 부딪히는 가랑비처럼 소리 없는 장벽에 막혀버렸네 바다 건넌 사랑이 내 세월 안에 그냥 주저앉았으면

내 영상시 2022.06.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