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우봉 노래, 순수를 탐하다

내 영상시 680

스쳐가는 바람

스쳐가는 바람 한문용 난 스쳐가는 바람 잔디밭 풀향기 냄새 맡으며 달빛 고요한 밤 한 줌 공간에서 황홀한 색만 떠올리는 곪아터진 흘러간 세월의 향수 그래서 소름 돋는 도취의 향연에 빠졌었지 잎으로만 돋아나는 관목의 부활 보며 문득 지나가는 고혹을 붙잡고 앙탈하던 사랑의 심술이 스치듯 데굴데굴 돌아들고 울고 싶을 때 울지 못하고 웃고 싶을 때 웃지 못해 속끓는 사랑 멈추지 못하는 쾌락에의 집념은 언제나 그 잔인한 상념의 뿌리에 박혀 자꾸 무너져 내리는 작은 양심 난 스쳐가는 바람

내 영상시 2023.02.17

밤에 내리는 것들

밤에 내리는 것들 /한문용 밤안개 뜬 날 묘한 빛 뿜는 가로등 물안개 정혈로 피워 낸 안개꽃 탁자 위에 덩그마니 놓인 빈 커피잔 밤에 내리는 것들은 모두 외로움뿐이다 문밖에서 서성거리다 힘없는 달그림자에 수치스러울 때 주눅 들어 숨어버린 상념들 선잠에서 깬 추한 내 모습 밤에 내리는 것들은 모두 외로움뿐이다 숱한 밤을 홀로 지새우기 싫어 북적이는 해변을 거닐어도 녹여줄 사람 없이 얼은 가슴 밤에 내리는 것들은 모두 외로움뿐이다 허허로운 가슴으로 깊어가는 정월대보름달 푸념 달래주는 한 줄기 고삭부리는 요요한 바람 밤에 내리는 외로움이 내게 안겨준 가는 겨울

내 영상시 2023.02.09

화상

화상畵像 한문용 망막 안에서 아른거리다가 꿈속에서 말초신경에 머물다가 혈맥을 타고 열두 경맥을 흐르다가 마침내 주먹만 한 심장에 떡 버티고 눌러 앉아 또렷이 되새김질 하는 기억 당신이었어 당신의 고른 숨결이었어 실타래가 곱게 풀렸어 한걸음에 달려갔어 방울방울 탐스럽게 열렸어 북두칠성 옆에 누어 별을 헤었어 내 마음을 바잡고 가슴에 새하얀 인忍을 새겨 두고 일렁이는 심파心波를 잠재웠지.

내 영상시 2023.02.01

새벽

새벽 한문용 내 의식意識 세월이랑 놀다온 오늘 금세 가버린 시간 위로 솟아오른 태양 계묘년의 아침은 여명의 빛을 쏜다 한겨울에도 바쁜 들녘 아낙네 손짝들 늘 그렇듯이 새벽바람 맞음 소중한 일상인 걸 귀한 생 탐하는 새벽별이 주황빛 창공을 이고 가는 시각 은은한 종소리를 가르며 언덕을 오르는 인걸들 모습 살갑다 바람 죽인 눈이 나풀거리며 내려 추는 춤사위 앞에 온전히 내려딛는 새벽 "Gabriel's oboe - Nella fantasia"

내 영상시 2023.01.07

세월 그 수레바퀴

세월 그 수레바퀴 한문용 그냥 가슴이 먹먹합니다 터질 것 같습니다 짧아진 하루 갑자기 멈춰버린 세월이라니요? 향기 없는 마른 눈에서 찐득한 핏물이 잔뜩 고였습니다 악마처럼 늘어선 빌딩 숲 그 사이에서 들리는 처참한 비명소리 어른들은 뒷짐만 지고 살려달라는 아우성 따윈 거들떠보지도 않았습니다 비통하게 다시 되풀이 되는 역사 겨레여 분노하라

내 영상시 2022.11.20

울고 싶은 날

울고 싶은 날 한문용 별빛 촘촘한 하늘에서 그대별 찾지 못하는 날 나는 울고 싶어집니다 덤불 속 홀로 핀 나리꽃 아픔이 눈에 저미어 오는 날 나는 울고 싶어집니다 숨 막히는 깡마른 날 안간힘 쓰며 쓰며 담벼락을 기어오르는 힘 부친 달팽이 모습이 보이는 날 나는 울고 싶어집니다 갯바람에 마구 부서지는 파도가 아픈 바위를 때리는 날 나는 싶어집니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보다 더 애련한 에는 사랑을 가슴 속에 까맣게 묻어둬야 하는 날 나는 울고 싶어집니다

내 영상시 2022.09.25

가을을 엮어

가을을 엮어 한문용 상현달 길을 달음질치다보면 작은 소리에도 멈추는 귀뚜리 노래 소리 앞에 초저녁에서부터 내려선 가을 문턱 온밤 붉은 이파리만 뜨락에 고즈넉이 걸터앉았다 엊그제 떠난 물만 먹던 하늘 섬 아래 거저 준 소슬바람을 찌르르 벌레소리 때문에 비워 둘 수밖에 없는 기억 살짝 벌어진 틈새로 구름 오듯 와닿는 가을소리 낙엽소리

내 영상시 2022.09.20

달무리

달무리 글 / 한 문용 불꽃처럼 피어나 다 태우지 못한 안타까움 채양 없는 구멍 뚫린 모자를 쓰고 눈썰미보다 작은 공간에서 시간을 붙잡고 동심원을 그린다. 달맞이꽃 이슬 선율에 밤안개처럼 스멀스멀 기어드는 적막한 기운 달무리 안에서만 빛나는 고독한 빙화(氷花)의 미소에 눈시울이 뜨겁다. 달무리여 그대는 석고상 그 창백함보다 더 진한 외로움을 타고 났을지라도 동녘에서부터 달려오는 빛의 향연에 넉넉한 잠의 둥지를 틀 수 있는 조용한 기다림이 있구나. 사랑으로 다가올 잔잔한 사색의 여운 네게서 배운다.

내 영상시 2022.06.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