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우봉 노래, 순수를 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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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마름

목마름 한문용 영혼 없는 갈잎 계절 오가는 곳에서 날은 저물고 추적거리는 안개비 네 모습이 샐녘처럼 붉어지기를 투명한 액체 속에서 곱게 그려지기를 날개 달린 은은한 목소리가 귓바퀴에 머물기를 밤보다 낮이 더욱 내밀한 곳에서 시도 때도 없이 무의미하다거나 외롭다거나 밋밋한 형용사로 도배된 공간 울릴 것 같아 클로즈업 되어 떠오를 것 같아 일상 흔들리는 시간 속으로 빛살처럼 내게 달려오는 네 모습

내 영상시 2023.03.17

흔 세상 앓아 누워

흔 세상에 앓아누워 한문용 세상에 기대어 세속을 부순다 이젠 흔 세상 꼽지 않으려고 해도 날이 갈수록 생은 구석으로 밀려 영은 쇠하고 육은 문드러져 내 생각 곯은 배 채우는 일상에만 골몰하니 차라리 앓아 누었다 초연을 초월한 해와 달에게 내 할 일을 물었더니 구름도 흐른다 하였다 온 세월보다 가는 세월이 한참 짧아진 것에 대한 반항적 넋두리 가혹하다거나 불안하다거나 무두 벗어놓고 내려놓으면 생이 빛바래지는 않겠다

내 영상시 2023.02.27

스쳐가는 바람

스쳐가는 바람 한문용 난 스쳐가는 바람 잔디밭 풀향기 냄새 맡으며 달빛 고요한 밤 한 줌 공간에서 황홀한 색만 떠올리는 곪아터진 흘러간 세월의 향수 그래서 소름 돋는 도취의 향연에 빠졌었지 잎으로만 돋아나는 관목의 부활 보며 문득 지나가는 고혹을 붙잡고 앙탈하던 사랑의 심술이 스치듯 데굴데굴 돌아들고 울고 싶을 때 울지 못하고 웃고 싶을 때 웃지 못해 속끓는 사랑 멈추지 못하는 쾌락에의 집념은 언제나 그 잔인한 상념의 뿌리에 박혀 자꾸 무너져 내리는 작은 양심 난 스쳐가는 바람

내 영상시 2023.02.17

밤에 내리는 것들

밤에 내리는 것들 /한문용 밤안개 뜬 날 묘한 빛 뿜는 가로등 물안개 정혈로 피워 낸 안개꽃 탁자 위에 덩그마니 놓인 빈 커피잔 밤에 내리는 것들은 모두 외로움뿐이다 문밖에서 서성거리다 힘없는 달그림자에 수치스러울 때 주눅 들어 숨어버린 상념들 선잠에서 깬 추한 내 모습 밤에 내리는 것들은 모두 외로움뿐이다 숱한 밤을 홀로 지새우기 싫어 북적이는 해변을 거닐어도 녹여줄 사람 없이 얼은 가슴 밤에 내리는 것들은 모두 외로움뿐이다 허허로운 가슴으로 깊어가는 정월대보름달 푸념 달래주는 한 줄기 고삭부리는 요요한 바람 밤에 내리는 외로움이 내게 안겨준 가는 겨울

내 영상시 2023.02.09

화상

화상畵像 한문용 망막 안에서 아른거리다가 꿈속에서 말초신경에 머물다가 혈맥을 타고 열두 경맥을 흐르다가 마침내 주먹만 한 심장에 떡 버티고 눌러 앉아 또렷이 되새김질 하는 기억 당신이었어 당신의 고른 숨결이었어 실타래가 곱게 풀렸어 한걸음에 달려갔어 방울방울 탐스럽게 열렸어 북두칠성 옆에 누어 별을 헤었어 내 마음을 바잡고 가슴에 새하얀 인忍을 새겨 두고 일렁이는 심파心波를 잠재웠지.

내 영상시 2023.02.01

새벽

새벽 한문용 내 의식意識 세월이랑 놀다온 오늘 금세 가버린 시간 위로 솟아오른 태양 계묘년의 아침은 여명의 빛을 쏜다 한겨울에도 바쁜 들녘 아낙네 손짝들 늘 그렇듯이 새벽바람 맞음 소중한 일상인 걸 귀한 생 탐하는 새벽별이 주황빛 창공을 이고 가는 시각 은은한 종소리를 가르며 언덕을 오르는 인걸들 모습 살갑다 바람 죽인 눈이 나풀거리며 내려 추는 춤사위 앞에 온전히 내려딛는 새벽 "Gabriel's oboe - Nella fantasia"

내 영상시 2023.01.07

침묵 속 서사

침묵 속 서사 한문용 뭔가 꼭 쓰고 싶다 얄팍한 종이 위에 달랑 쓴 칠은 삶 중에 거저 준 은총 그리피우스의 ‘빵과 포도주’만큼이나 서정 같은 생명줄이 줄기줄기 뻗어나가기를 뭔가 꼭 그리고 싶다 네오나르드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을 보며 죄와 벌 죽음과 부활을 체험한 성숙한 감성 뒤에 명쾌한 삶은 희생에서 얻는 값진 온유 그리고 지혜 아닌가! 뭔가를 썼는데 뭔가를 그렸는데 만져지는 느낌 하나도 없구나 "Gabriel's oboe - Nella fantasia"

영성글 2022.12.14

세월 그 수레바퀴

세월 그 수레바퀴 한문용 그냥 가슴이 먹먹합니다 터질 것 같습니다 짧아진 하루 갑자기 멈춰버린 세월이라니요? 향기 없는 마른 눈에서 찐득한 핏물이 잔뜩 고였습니다 악마처럼 늘어선 빌딩 숲 그 사이에서 들리는 처참한 비명소리 어른들은 뒷짐만 지고 살려달라는 아우성 따윈 거들떠보지도 않았습니다 비통하게 다시 되풀이 되는 역사 겨레여 분노하라

내 영상시 2022.11.20

세상이 울고 있다

세상이 울고 있다 한문용 참담하다 세대를 이을 젊은이들 허망한 누임에 눈물이 난다 치밀어오는 자괴감 주체할 수 없는 분노 치가 떨린다 무책임의 극치 후진국 형태 안이한 대처에 나뭇잎처럼 스러지는 국가 잘못한 사람도 참으로 용서를 비는 용기 있는 사람 하나 없구나 누가 이 슬픔을 내었는가 국민 안위 콘트럴타워는 과연 존재하는가 시월 마지막 날 죽음안개 짙게 드리운 새벽 쇠하는 국운에 침잠하는 정토사 종소리 아! 울부짖는 영혼

영성글 2022.11.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