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우봉 노래, 순수를 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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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백 후

고백 후 한문용 나는 지금 참으로 알뜰하다 이슬비 땅 위를 살며시 내리듯 메마른 가슴 촉촉이 젖어 있다 속죄의 고백 그 이후 불꽃처럼 타오르던 탱탱한 분기는 속량의 보속 끝에 어느 새 핀 향기가 되더니 금세 뇌하수체를 적셔 양 볼을 어루만지고 따스한 기운 온 몸을 돌아 끝내 눈물이되어 사랑의 싹 틔우고 작은 겨자씨처럼 하늘을 들어 올렸다 향기를 입으로 쓰는 가는 속삭임 촛불 켜고 두 손 모을 때 마음은 잔잔한 호수가 된다

내 영상시 2021.01.25

가라고한다

가라고 한다 한문용 가라고한다 돌아가지 말고 바로 가라고한다 정리를 위한 길, 성찰을 위한 길 골고타 언덕길을 가라고한다 숨이 턱턱 막힐지라도 산길을 가라고한다 지나온 길은 더듬지 않겠다 도드라진 흔적 어디 있으랴 흠 없는 시간은 정지되지 않았다 사랑이 시계는 거꾸로 가지 않았다 믿음의 꽃은 엄동설한에도 가슴에 오롯이 폈다 내 세월 향기 수선화처럼 고고하지 않아도 그윽하게 피어나기를 그 길을 주저하지 말고 가라고한다.

내 영상시 2021.01.25

눈의 고독

눈의 고독 한문용 오랜 시간 참을 만큼 참았다 하늬바람이 귓볼을 세차게 때리더니 술취한 나그네처럼 갈짓자 걸음으로 사락사락 울림소리 뱉어내며 내린다 아마도 세상을 비웃는 한풀일게다 역겨운 것을 덮으려는 배려일게다 순리에 순응하라는 경고일게다 더 낮아지라는 가르침일게다 어쩌면 어눌한 세태에 지쳐버린 흐느낌 그것은 하얗게 시린 예리한 눈의 고독 진정 잠잠하기를 소망하는 기다림일게다

내 영상시 2021.01.03

전율

전율 한문용 곤두선 머리카락이 하늬바람에 날린다 서우둘레길 밑에서 우는 바닷물 물보라 파장이 검은 현무암을 친다 결단에 앞선 핏발이 서고 행위에 앞선 몸부림이 나를 태웠다 구름 사이로 쏟아지는 현란한 달빛 길바닥에서 칼바람에 구르는 속 빈 캔처럼 멋대로 굴러 범벅이 되어버린 세월 그러나 삶의 소멸은 아니다 따가운 시선에 흠칫 놀라고 나신에 회초리를 대어도 새 세포로 거듭나 세파에 흔들리지 않았다 무에서 유를 창출하는 재주는 없어도 시의 신비를 체험하며 전율하는 매력에 취해 높아지는 고독 속을 한 줌 심장이 두근거릴 때에도 전율은 하늘에서 내려오지 않았다

내 영상시 2020.12.08

어쩌자고 쪼개어지는가

어쩌자고 쪼개어지는가 한문용 겨울이 온누리에 어름장 밑에 하얗게 머룰러 가슴시리다 바람이 능선을 타고 거슬러올라 슬며시 골목길 어귀를 돌아내려 나뉜 가슴팍을 샅샅이 흝고 이내 이분법적 세상을 낚아 올렸다 성근 하늘엔 구름이 비껴가고 어느덧 노을 호숫가엔 무리진 철새들이 둥지를 틀어 빨간날마다 저들만의 정의를 외쳐댄다 이제 세월은 두동강이나 갈가리 찟겨졌다 민심을 아우르는 정은 간 곳 없고 제 일에 함몰된 이익집단만 활개친다 질린 가슴 언저리에 씁슬함만 그득하다 어쩌자고 쪼개어지는가

카테고리 없음 2020.12.08

허튼소리(2)

허튼소리(2) 한문용 내 시간이 노랗게 변했다 짓무른 속을 꺼내어 말려야하겠다 골목길에 내 얼굴을 걸어두었다 퇴색해버린 잔디가 하늘을 향해 웃고 있다 윤회의 색깔 그 상상에 웃고 있다 가을 금잔화가 송이송이 앙증스럽다 겨울을 재촉하는 심사가 부드럽다 내가 신작로에 서 있다 휙휙 지나가는 자동차 소리에 고양이도 놀란다 틈새를 이용하는 농간들이 우쭐댄다 세상이 빙빙 돈다 바깥세상은 벼랑길이다 온전한 가슴은 어디에도 없다 정치놀음에 몰두하고 민생을 외면한다 한증막처럼 끓어오르는 흉한 열기가 여기저기서 날름댄다 다람쥐쳇바퀴 같이 것 도는 질문이 역겹다 정리를 위한 순수가 절실하다

내 영상시 2020.11.19

상달에 내리는 비

상달에 내리는 비는 한문용 상달에 내리는 비는 추억 익어가는 다듬이 소리 별과 달 그리움 하나 씩 훔치고 몰래 제 몸 숨길 때만 눈물이 된다 연약한 가슴에 줄기 타고 흘러내려 그렇게 고운 단풍 되었어도 상달에 내리는 비에 몸살 난 가을이 점점 여위어 가는 길목 빛바랜 슬픔 어찌 견디려는지 팔랑이는 것들 주저리 주저리 모여 고운 빛깔 탐내다 타다 남은 누런 잎맥만 덩그렇다 넋두리 만 고여 눈물이라 이름 짓고 남은 사랑 가슴에 묻을 때 상달에 내리는 빗소리 귀여겨들으면 저 멀리서 나지막이 들리는 봄빛 파닥이는 소리

내 영상시 2020.10.09

가슴뜨락을 비우다

가슴뜨락을 비우다 한문용 지금은 잠시도 머무를 시간이 없다 가뿐 시간 속을 유영하듯 흐르는 세월이 가져다 준 가을 하나 둘 낙엽 지는 소리 하나 둘 꽃잎 떨어지는 소리 하나 둘 곁을 떠나는 소리 요란한 상념에 무너진 파랗게 익었던 낭만 절제를 강요하는 세태인 건 분명하다 멘토링 같은 관계와 관계 사이 나와 너가 아니라 우리여야 한다 가슴뜨락에 남은 찌꺼기를 쓸어낸 후 외로움 날갯짓이 비상 할지라도 비뚤어진 내 모습 지워지면 해탈이 아니더냐 위선이 몸부림치는 가을을 텅 비운 가슴뜨락

내 영상시 2020.09.24